산행이야기/산행기억

ㄱㅏㄹㅣ봉 [2010/01/17]

낭만칼잡이 2010. 1. 18. 20:44

※ 산행지 : 가리봉(1,518.5m)
※ 위치 : 강원도 인제군, 읍 일원
※ 날씨 : 맑음, 대기중 개스 약간
※ 산행코스
자양6교 - 천연기념물 보호비 - 필례령 - 가리봉 - 주걱봉 - 느아우골 - 옥녀2교
※ 산행일정
10 : 10 자양6교, 산행시작
12 : 18 ~ 12 : 48 점심식사(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어디쯤인지 당체... 다만 헬리포트 느낌이 날 정도의 평지였음)
14 : 10 가리봉, 한계령 이정표
14 : 59 가리봉
16 : 37 주걱봉 우회 로프코스
19 : 19 옥녀2교, 산행종료
설악산 서북릉을 산행하거나 대청봉에 서게 돼면 늘상 한번쯤 바라보게 돼고 '언제고 한번쯤...'이란 생각을 했던 곳이었다.
오르내림이 가파르고 험해 코스가 꽤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몸이 좋지 않기 때문에 더 힘들 것도 예상했지만 기회가 자주 있는 곳이 아니라서 산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에도 불구하고 푹푹 빠지는 눈 때문에 일천한 산행경력이지만 그간의 산행 중 가장 힘겨운 산행이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산 중 거의 다 내려와서는 바위틈에 발목이 끼며 넘어져 오른 무릎이 깨지는 부상도 입는다.
웃기는건 피가 내의와 양말을 붉게 물들이도록 흘렸음에도 내가 다친걸 집에 와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산행을 마친 후 마른 양말 갈아 신을 땐 확인이 안됐었는데 지혈이 돼지 않았던지 그 후로 한동안 계속 피가 났던 모양이다.
사실 넘어지고 난 후 계속 통증을 느꼈지만 '넘어졌으니 당연히 아프지'라고 생각하며 바지 걷어 확인조차 안한채 버스에 탑승한 후 계속 잠만 잤던 것이다.
약 먹으면서 산행하고, 다쳐도 확인해 볼 생각조차 안하고... 나도 참 무던한 놈인것 같다.
자기 몸 스스로 챙기는게 우선일진데 왜 이러고 다니는지...
▲ 들머리 자양6교
산행시작은 한계령을 넘나드는 44번 국도의 자양6교 옆쪽으로 올랐다.
평소 같으면 여기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능선에 오르게 될 정도로 많은 고도를 벌고 시작한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날은 그간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처음부터 상당히 고전한다.
아이젠을 착용했음에도 한발짝 내딛으면 그만큼 미끄러져 내려 가는거처럼 느껴지는게 이 날의 험난한 산행을 예고했던 셈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화강암으로 만든 작은 천연기념물보호비가 있다는데 눈으로 파묻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 시야에 들어온 가리봉
▲ 능선에 올라 바라본 귀때기청봉
▲ 귀때기청봉과 대청봉
▲ 가리봉, 한계령 방향 이정표
눈이 꽤나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 가리봉 오르막에서 바라본 점봉산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가리봉 오르막은 더욱 힘들다.
눈 쌓인 곳을 앞선 사람들이 지나가면 발자국이 생기는게 일반적일텐데 이 날은 그렇지가 못한 곳도 많았다.
그런 곳에선 내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바로 눈이 쏟아져 내려 사람이 지나간 흔적만 남을 뿐 나도 앞사람과 똑같이 러셀을 하는 셈인 것이다.
더구나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그런지 안그래도 가파른 오르막이 아이젠이 무색할 정도로 미끄러지는 통에 시간은 시간대로 소요돼고, 힘은 힘대로 들고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런 곳에선 아이젠의 피크가 긴 것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날 착용했던 짚신형 아이젠은 그렇지가 못했다.
그래도 주변의 시원시원한 조망만큼은 큰 위안이 돼준다.
▲ 가리봉 정상
※ 가리봉에 대해
설악산은 백두대간의 주맥인 대청봉에서 북으로 공룡능선을 따라 미시령까지 ,남으로는 점봉산까지 일직선을 그어 그 동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이라고 일컫는다. 해발 1,519m의 가리봉은 설악산국립공원에 포함된 산이지만 설악산의 귀떼기청봉(1,580)과 대승령을 잇는 설악산 서북 주능선과 마주보고 있어 독립된 산처럼 보인다.
인제에서 한계령쪽으로 달리다 보면 옥녀교, 장수교, 장수대를 지나면서 우측으로 험하게 벽이 보이는 산이다.
가리산 능선은 가리봉(1,518m), 주걱봉(1,041m), 삼형제봉(1,225m)을 중심으로 동서로 뻗어있다. 이들 봉우리를 맞은편 서북릉에서 보면 의좋은 형제처럼 어울려 있어 세봉우리를 통털어서 삼형제봉이라 일컫기도 한다 .
가리산은 국립공원내에 있으며 많이 찿지 않는 산이기도 하다. 우선은 설악산이 가깝고, 길이 험하고, 통제도 심하기 때문이다. 주능선은 거의 일직선이기에 길을 잃은 염려는 없지만 수림이 우거지고 능선길이 매우 가파르고 잔돌 너덜지대가 많아 산행이 결코 쉽지는 않다.
▲ 가리봉 정상에서 바라본 설악산 서북릉과 점봉산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사실은 360도 파노라마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었었지만 배터리가 방전돼 전원이 나가버렸다.
지난 연말에 소백산에서도 산행 끝날 때까지 버텼었고 무엇보다 이 날은 그다지 추운 날씨가 아니라고 생각해 배터리 방전을 막기 위한 조치를 안하고 있었는데... 방심이었나 보다.
다시 작업해 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가리봉에 이르는 시간이 너무 소요돼 버렸고 일몰시간 역시 부담스런 사항이었음에 배터리를 따뜻하게해 다시 써먹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다.
▲ 가리봉에서 바라본 주걱봉 방향 능선
뭉뚝한 암봉이 주걱봉, 그 뒤로 삼형제봉
▲ 주걱봉을 더 가까이 다가서며
주걱봉은 밥공기를 엎어논 모습, 마치 주걱 반토막처럼 생겼기에 주걱봉이라고 한다.
정상에서 전원이 나간 후 배터리를 빼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다닌다.
▲ 주걱봉을 향하던 중 바라본 안산
▲ 주걱봉을 우회하는 로프구간(통과 전 내려본 모습)
▲ 주걱봉을 통과하는 로프구간(통과 후 돌아본 모습)
주걱봉은 오를수가 없어 우회하는데 그 우회길에 설치된 로프구간이다.
사진으로 보면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여긴 남자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곳이다.
자칫 실수하면 낭떨어지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 긴장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곳을 산행할 경우 가장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만큼 한명 한명 통과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위 로프구간을 통과한 후 가장 크게 피부에 와 닿는건 일몰시간이었다.
배낭 꾸릴 때 랜턴을 책상 위에 놓고 못 챙겼기 때문이기도 했고, 실상 내게 랜턴은 큰 도움이 돼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난 야간산행을 피하는게 상책인 것이다.
이후 다른건 신경 안쓰고 최선을 다해 산행속도를 올린다.
해가 있을 때 갈 수 있을만큼 많이 가야 했으니까...
▲ 하산하던 계곡
삼형제봉 못 미친 지점에서 일행의 흔적은 계곡으로 향한다.
느아우골로 내려서는 길인데 상당히 가파르다.
발을 내딛으니 뭔가에 걸릴 때까지 그냥 미끄러지는데, 그걸 이용해 중심을 잡으며 최대한 빨리 하산을 시도한다.
얼어붙은 물길에 이르러 조금은 완만해 지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다.
내가 보기엔 눈 때문이라도 길이란 개념은 더욱 없는 듯 싶다.
산행리더에게 듣기론 지난 번 설악산 수해 때 상태가 더 심화됐다고 한다.
얼어붙고 눈 덮인 계곡을 따라 걷다가 길이 마땅치 않으면 계곡 위로 올라붙었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오길 수차례...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서야 했고, 짚신형 아이젠이 돌아가 다시 신길 수차례 반복했다.
대부분은 많은 눈 때문에 아프지도 않았지만 거의 하산을 앞둔 시점에서 발목이 바위 틈에 끼어 넘어졌을 때 무릎을 바위에 부딪치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서두에 적은 것처럼 출혈이 있었음에도 집에 와서야 알았다.
도둑산행의 댓가인가 보다. -_-;
▲ 옥녀2교
그나저나 도상 옥녀1교로 하산해야 하는데 내려와 보니 옥녀2교가 버티고 있다.
아무래도 눈과 어둠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