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지 : 소백산(1,439.5m)
※ 위치 : 충북 단양군,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 단산면 일원
※ 날씨 : 맑은 후 오후에 점차 흐려지며 강한 바람과 함께 약간의 눈
※ 산행코스
죽령-제2연화봉-연화봉-제1연화봉-비로봉-국망봉-늦은맥이재-마당치-고치령 (25km)
※ 산행일정
08 : 40 죽령, 산행준비
09 : 00 산행시작
10 : 23 ~ 10 : 45 제2연화봉
11 : 30 ~ 11 : 35 연화봉
11 : 56 ~ 12 : 45 제1연화봉 전 비로봉 3km 이정표 뒤에서 점심식사
12 : 54 제1연화봉
13 : 57 ~ 14 : 07 비로봉
15 : 07 ~ 15 : 32 국망봉
15 : 57 ~ 16 : 20 늦은맥이재
18 : 23 마당치
19 : 20 고치령, 산행종료
소백산은 근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산행경험이 있는 곳 중 한 곳인데, 정상인 비로봉을 정점으로 이런저런 곳에서 올라봤어도 종주는 해본 경험이 없어 모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팀에 붙어 나름 '소백산 종주'라 타이틀을 정하고 나선 산행이었다.
일단 산행을 하면 부상이 아닌 다음에야 중도 하산한 적이 없어 완주에 대한 걱정은 없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대간팀의 산행속도를 맞춰줄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이 제법 컸는데, 결과적으로 후미를 배려하는 운영자들의 팀운영으로 산행초반부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나저나 왼쪽 무릎이 이번 산행으로 또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잠잠하길래 태화산 때부터 산행 좀 자주 해볼까 했는데... 산행을 하더라도 짧게 하거나 무릎에 휴식을 더줘야 하는걸까?
한참 아플 때의 심한 통증은 아니니까 큰 걱정은 안하지만 일단은 상태 지켜보고 몸 좀 사려야겠다.

▲ 죽령의 산행들머리 옆 안내도

▲ 들머리 이정표
이곳에서 천문대에 이르는 7km의 구간은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제2연화봉에 오르기 전까지는 조망도 별로 없는 다소 지루한 길이어서 종주나 백두대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보통의 산행객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

▲ 시야에 드러난 제2연화봉

▲ 제2연화봉의 KT송신소 아래 이정표

▲ 제2연화봉 KT송신탑

▲ 제2연화봉 표지석

▲ 위 제2연화봉 정상석 위에서 바라본 조망(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죽령 남쪽 구간의 백두대간 봉우리들이 여럿 보인다.
작업하다보니 월악산 앞쪽 봉우리는 제비봉 같은데 잘 모르겠다. -_-;

▲ 제2연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 천문대와 연화봉
제2연화봉은 송신소 시설 때문에 오를 수 없어 정상석을 앞으로 등로가 나있는데 평평한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전망대 시설이 돼있다.
전망대에서 가야할 길만 바라보고 나머지 조망은 비로봉에서 해보기로 마음 먹는다.

▲ 소백산 천문대
첨성대 모양을 본 따 만들었다는데 내게 이런 곳은 산행 포인트일뿐 별 관심이 없다.
둘러본대도 오후 시간대 얼마동안만 가능하고 그럴 시간도 없어 그냥 스쳐지나 간다.
어차피 밤에 별 보던 직원들이 이 때엔 별 볼 일 없어 잠들었을 시간일터다.

▲ 연화봉 아래의 이정표

▲ 연화봉 정상석
소백산엔 비로봉에서 가까운 순으로 제1연화봉, 연화봉, 제2연화봉의 순으로 이름지어진 봉우리가 있다.
전에 이에 관계해 소백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제1, 제2, 제3 연화봉이 아니라 왜 위와 같은 순으로 이름이 붙어 있는지 유래라도 있는건가 문의해 본 적이 있었다.
국공 측은 아래와 같은 답변을 해주었다.
소백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입니다.
우선 연화봉의 이름 유래는 두가지가 전해집니다.
1. 우선 비로봉의 유래를 알아야 겠네요. 비로봉의 '비로'는 비로자나불의 비로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의 진신을 높여 부르는 말로 불교의 근원적인 부처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제일 높은 불상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는데요, 여기서 유래하여 제일 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소백산 외에도 금강산, 팔공산, 치악산, 오대산 등에도 비로봉이 있습니다.
연화봉의 '연화'는 연꽃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처님의 주변에 항상 있는 꽃이 바로 연꽃입니다. 그래서
비로봉 주변의 봉우리를 '연화'라는 명칭을 넣어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석가의 진신을 높여 부르는 말로 불교의 근원적인 부처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제일 높은 불상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는데요, 여기서 유래하여 제일 높은 봉우리를 비로봉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소백산 외에도 금강산, 팔공산, 치악산, 오대산 등에도 비로봉이 있습니다.
연화봉의 '연화'는 연꽃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처님의 주변에 항상 있는 꽃이 바로 연꽃입니다. 그래서
비로봉 주변의 봉우리를 '연화'라는 명칭을 넣어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2. 소백산의 5월은 철쭉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철쭉이 피었을 때 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하여 연화봉으로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연화봉, 제1연화봉, 제2연화봉으로 이름이 붙은 것은 별다른 이유나 순서가 없으며 제1연화봉, 제2연화봉,
제3연화봉으로 이름이 붙는 것과는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3연화봉으로 이름이 붙는 것과는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 연화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방향(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 점심식사를 했던 비로봉 3km 이정표
점심식사전까지는 아이젠을 없이 걸었지만 칼바람으로 유명한 소백산이니만큼 앞으로 진행할 길은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많을거 같아 식사 후 아이젠을 착용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눈이 많은건 아니었다.
아마 녹았다기보단 강풍에 쌓인 눈조차 날려버려 쌓여있는 양 자체가 많지 않았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제1연화봉 오르막 계단
점심식사 후 먹은 약 때문인지 몸이 좀 나른하다.
계단 오르막을 오르는데 힘이 뒷받침이 안돼 한번에 오르는데 꽤나 숨가빠 해야만 했다.

▲ 제1연화봉 이정표
내게 악몽의 기억이 있는 제1연화봉이다.
실제 정상은 이정표 뒤쪽으로 약 60~70m쯤 올라야 하는데 정상부는 약간의 바위군이 차지한다.
2004년 5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실제 정상을 올라 바위 사이를 뛰다 왼쪽 무릎을 바위에 부딪쳐 슬개골을 다쳤는데 희방사 방면으로 하산하는데만 6시간이 걸렸었다.
그 후, 2004년 나머지 기간동안 치료 때문에 산행을 할 수 없었고, 2005년이 돼서야 다시 산행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때만해도 무리하면 찾아오는 통증 정도였지만 지금은 시도때도 없이 아픈 경우가 잦아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한번 가볼까도 했지만 뭐 좋은 기억이라고... 사진 한컷 찍고 그냥 지나친다. -_-;

▲ 가까워진 비로봉

▲ 비로봉의 이정표
비로봉엔 두개의 정상석이 위치한다.
하나는 이 사진 속의 정상석이고 또 하나는 아래 사진 속의 정상석이다.
양쪽다 기념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해 사람없는 모습을 담기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이쪽은 성공, 아래쪽은 간신히 정상컷 하나 건졌다.

▲ 비로봉 정상석
어떤 분께 부탁해서 하나 건졌다.
가뜩이나 루저에 속하는지라 발목에서 자르는 사진 댑따 싫어하지만 수 많은 사람 속에서 이거라도 건졌으니....
-_-;
※ 소백산에 대해...
소백산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소(小)가 아니라 백(白)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밝음(白)'을 숭상했기에 신령스러운 산에 백(白)자를 넣었다.
백두대간의 시원 백두산을 비롯해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 등이 그렇다. 여기서 백(白)은 밝음의 뜻만이 아니라 '높음', '거룩함'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백산의 산세는 부드럽고 온화해 사람들이 살기 좋았다. 조선후기 유행했던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풍기, 춘양, 영월, 태백 등 많은 십승지가 유독 소백과 태백의 양백지간에 걸쳐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중환의<택리지>에 '방사 남사고'가 소백산을 보고 말에서 내려서 절하며 '이 산은 사람을 살리는 산이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고, 퇴계 이황이 소백산을 오른 기록인<유소백산록>에 산행 일정이 상세하게 기록된 문헌이 있음은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백산의 핵심은 천상의 화원을 이루는 연화봉~비로봉~국망봉 능선이다. 이곳을 계절과 산행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해 산행 코스를 잡는 것이 현명하다. 희방사 들머리는 소백산 등산로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시작해야만 연화봉에서 시작하는 초원 능선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죽령에서 시작해도 연화봉에 닿지만, 포장도로가 깔려 걷는 맛이 좋지 않다. 주차장에서 희방사까지는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절 입구에는 수직암벽을 타고 내려오는 희방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그 모습을 서거정(1420~1488)은 '하늘이 내려준 꿈에서 노니는 듯한 풍경'이라 평했다.
또한 소백산 북릉인 신선봉(1272m)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리던 능선이 마치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고 9개의 능선에 8개 골짜기를 만들어 낸 곳을 '구봉팔문(九峰八門)'이라 부른다. 제3문봉과 제4문봉 사이 골짜기 아래쪽에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救仁寺)가 자리잡고 있으며, 주능선을 중심으로 동쪽인 경북 영주 쪽에는 부석사와 소수서원, 비로사, 희방사 등이, 서쪽과 북쪽에는 고수동굴과 노동동굴, 천동동굴, 온달산성 등이 있어 볼거리도 많은 산이다.

▲ 비로봉에서의 조망(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제2연화봉을 지날 때보다 기상 상태가 훨씬 안좋아졌다.
예보대로 하늘도 흐려졌고, 기온도 떨어지고, 바람도 강해졌다.
처음엔 상고대는 없어도 복 받은 날씨라고 생각했지만 소백산은 '이거 왜 이래? 나 소백산이야! 칼바람 알잖아?'라고 말하는듯 했다.
역시 바람의 나라 소백산답다.
그 칼바람 때문인지 일행들은 국망봉을 향해 출발해 한명도 안보여 마음이 급해진다.
나 스스로도 추위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 대충대충 카메라를 돌려가며 주변 산군에 시선을 꽂아본다.
춥고 마음이 급해서인지 또 360도가 완성이 안됐다.

▲ 비로봉에서의 조망(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잠시 모습을 보였다 사라진 산이 있어 눈여겨 뒀다가 산경도를 보려 했지만 강풍 때문에 도저히 여건이 안됐다.
집에 와서 산경도를 들여다 보며 기억과 매치시켜 봤는데 삼척의 청옥산으로 보여졌다.

▲ 비로봉에서의 조망(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 비로봉에서의 조망(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 국망봉 정상석
비로봉에서 시간을 보낸 후 먼저 출발한 일행들을 쫒아 빠르진 않지만 열심히 걷는다.
여기서 어느 정도 야간산행을 해야할거 같은 생각이 들어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긴다.
랜턴이 있기야 했지만 눈에 문제가 있어 랜턴이 별도움 안돼다 보니... 체력훈련 삼아 야등했던 손바닥 보듯하는 보문산하고는 다르니까 긴장 엄습이다.
혹시나 딴짓 하다가 다른 일행들 놓치지나 말자고 생각한다.

▲ 국망봉 안내판

▲ 국망봉에서 바라본 북진 백두대간길

▲ 늦은맥이재 이정표
율전으로 하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일반적인 소백산 종주 코스라고 하던데 난 대간팀에 붙었으니 고치령까지다.
이곳에서 바람을 피해 휴식을 취하며 후미를 기다린다.

▲ 마당치 이정표
이미 어두워진지 오래다.
어차피 조망 같은건 볼 수 없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는 것에만 온 신경을 쓰며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 고치령 이정표
이번 산행의 종착지이다.
※ 고치령에 대해...
고치령 지명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높은 고개였기에 고치(高峙)였는데 어느새 古峙가 되었다고 한다.
한자화 하지 않은 이름도 '고치'를 사용한다.
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곶적령(串赤嶺)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시절 사람들이 이 고개를 대하는느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뜻을 세웠다'하여 건의령(建議嶺)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함백산 너머의 건의령은 옷을 건 건의령(巾衣嶺)이라 한자를 달리 쓰고 있다.
높은 고개였기에 고치(高峙)였는데 어느새 古峙가 되었다고 한다.
한자화 하지 않은 이름도 '고치'를 사용한다.
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는 곶적령(串赤嶺)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시절 사람들이 이 고개를 대하는느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단종 복위와 관련하여 '뜻을 세웠다'하여 건의령(建議嶺)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함백산 너머의 건의령은 옷을 건 건의령(巾衣嶺)이라 한자를 달리 쓰고 있다.

▲ 고치령의 장승

▲ 고치령의 산신각
지금의 모습은 200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고치령은 조선시대 계유정난 이후 영월에 유배된 소년왕 단종의 복위를 꿈꾼 이들이 순흥에서 영월을 가기 위해 넘나들던 길.
당대의 혁명가들은 단종을 지키려다 순흥에 유배된 그의 숙부 금성대군의 소식을 단종에게 전하기 위해 이 길에 숨어들었다. 복위운동이 끝내 실패로 돌아간 후 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단종의 영은 태백산 신령이 되고, 금성대군은 소백산 신령으로 살아 두 산을 잇는 고갯마루 고치령을 지키고 있다.
'산행이야기 > 산행기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주 계룡산 [2011/01/09] (0) | 2011.01.10 |
---|---|
김천 대덕산 [2011/01/02] (0) | 2011.01.03 |
운장산-연석산 [2010/12/19] (0) | 2010.12.20 |
광양 백운산 [2010/11/13] (0) | 2010.11.14 |
설악산(한계령-대청봉-공룡능선-소공원)[2010/09/26] (0) | 2010.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