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야기/산행기억

봉화 청량산 [2008/10/05]

낭만칼잡이 2008. 10. 6. 01:00

※ 산행지 : 청량산 (870.4m)
※ 위치 : 경북 봉화군 일원
※ 날씨 : 흐림
※ 산행코스
입석 - 청량사 - 자소봉 - 탁필봉 - 연적고개 - 뒤실고개 - 장인봉(정상) - 두들마을 - 청량폭포
※ 산행일정
11 : 02 주차장
11 : 15 선학정
11 : 26 입석
11 : 52 응진전
11 : 58 총명수
12 : 15 청량사 유리보전
12 : 20 청량사 위 하늘다리, 자소봉 방면 Y형 갈림길
13 : 04 자소봉
13 : 30 ~ 14 : 10 연적고개와 뒷실고개 사이 능선에서 점심식사
14 : 15 뒷실고개
14 : 23 하늘다리
14 : 45 선학봉과 장인봉 사이 안부 갈림길
14 : 55 ~ 15 : 03 장인봉
15 : 05 전망대
15 : 18 다시 선학봉과 장인봉 사이 안부 갈림길로 돌아감
15 : 45 두들마을
16 : 07 청량폭포 앞 날머리
※ 함께한 이들 : daum 2030산악회
※ 비용 : 회비 25,000원
※ about 청량산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따르면, 청량산은 고대 이래로'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금탑봉에 자리 잡은 상청량암(上淸凉庵)과 하청량암(下淸凉庵)이 널리 알려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산 이름이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청량산은 주세붕(周世鵬)이 명명한 12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며, 태백산에서 시원하는 낙동강이 산의 웅장한 절벽을 끼고 유유히 흘러가며 뫼뿌리마다 많은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다.
청량산에는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을 비롯한 20여개의 절터와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 (淸凉精舍)와 서성(書聖)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 많은 유적과 선현들의 자취남아 있으며,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1982년 8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설악산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차 오래 타는걸 싫어해서 가지 않았던 곳을 점차 가보게 돼는 것 같다.
청량산이 위치한 봉화는 얼마전까지 오지 중에 한곳이었고, 길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긴 승차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그만큼 어렵게 간 곳이었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개스가 많이 낀 날씨 때문에 근거리만 조망할 수 있음은 못내 아쉬웠다. 오후 늦게 우천예보가 있었으나 산행하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음에 만족해야 할 거 같다.
▲ 주차장
▲ 초입의 선학정
포장길을 따라 본격 산행들머리라 할 수 있는 입석까지 걷게 된다.
▲ 선학정 맞은편의 안내도
▲ 입석(?)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산행 들머리 근처에 입석이라 할만한게 이거 밖에 없었으니 맞을듯 싶다.
그나저나 산행객들 참 많이도 왔다.
▲ 본격 산행들머리
위 개념도상 입석
▲ 첫 삼거리
좌측 방향은 청량사를 거쳐 하늘다리 방면으로 치고 오르는 길인데 이 방향으로 가면 청량사의 명승지 중 한곳인 응진전을 갈 수 없다. 우리 일행은 계단을 올라 이정표상 응진전 방향으로 향한다.
▲ 금탑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응진전
▲ 응진전 주변의 암벽
금탑봉 암벽이다.
▲ 응진전
※ about 응진전
금탑봉 중간절벽 동풍석(動風石) 아래에 위치한 청량사의 부속 건물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맞배 기와집으로 내부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16나한과 더불어 법당 내부에 광민왕)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공민왕의 청량산 몽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법당 앞에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주세붕(周世鵬)은 자신의 자(字)를 따서 경유대(景遊臺)라 이름하였다.<응진전 안내문 발췌>
▲ 총명수
응진전을 뒤로 하고 금탑봉을 돌아 조금가면 총명수에 이른다.
옆에는 대문장가인 최치원 선생이 이 물을 마시고 더욱 총명해졌다는 유래담을 적어놓은 안내판까지 있지만 들여다보니 수량도 적고 영 마시기가 떨떠름하다. 솔직히 안내판이 없다면 사람들이 거들떠 볼 것 같지도 않다.
▲ 청량사(내청량사)
총명수를 지나며 바라본 청량사
▲ 산꾼의 집
▲ 산꾼의 집 옆에 위치한 청량정사
※ about 청량정사
연화봉과 금탑봉 사이의 계곡에 자리잡은 청량정사는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유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림들이 논의하여 1832년(순조 32)에 건립되었다. 이후 청량정사는 선생의 뜻을 기리는 많은 후학들에게 학문과 수양의 장소가 되었으며 구한말에는 청량의진(淸凉義陳)이 조직되어 의병투쟁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96년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1901년에 중건한 것이라 하고, 경북 문화재 자료 제 244호로 지정되어 있다.<안내문 발췌>
▲ 청량사 5층 석탑
▲ 청량사의 주 법당인 유리보전
사실, 예정된 산행코스에 청량사가 들어있지 않다는건 알았지만 유서깊은 고찰인데다 청량산에 왔는데 청량사를 들러보지 않는다는건 왠지 허무한 생각이 들어, 멀지 않고 길이 다시 만난다는 점 때문에 살짝 들러보기로 한다.
※ about 유리보전
공민왕이 썼다는 현판의 `琉璃寶殿`과 종이를 녹여 만들었다는 지불(紙佛)은 이 절의 진귀한 보물. 동방 유리광 세계에서 병든 중생을 해탈시켜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불전으로, 일반적으로 약사전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약사불이 거처하는 곳을 따 불전 이름을 지었다. `寶`자는 부처님을 최소한 한 분 더 모시고 있다는 뜻으로 왼쪽에는 석가불이 안치되어있고 약왕보살이 오른쪽 협시로 되어 있다. 종이로 만든 약사여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지금은 금칠이 되어있다.
※ Tip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며,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을 극락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약사여래불을 모시면 약사전, 부처님 제자인 나한을 모시면 나한전(또는 응진전)이라는 현판을 붙인다.
※ 유리보전의 현판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이 현판의 왼쪽에「무신국추 유산객서(戊申菊秋 遊山客書)」라는 글이 낙관처럼 남아 있다. 이 글은'무신년 국화꽃 피는 가을에 산을 유람하는 손님이 쓰다'라고 해석되는데, 사찰의 현판에 낙관이나 이름을 겉면에 남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 것과 또 공민왕이 복주(지금의 안동)로 피난을 와서 청량산에 머물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들어 학자들은 왕의 필체라고 주장한다.
기울어진 고려의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운 공민왕은 자신보다 10년을 앞서 세상을 떠난 노국공주를 그리워하다가 부하의 손에 살해되는 비운의 왕이었지만, 유리보전의 글씨를 그의 것으로 믿고 청량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공민왕 신당에 해마다 제를 올리고 있는 동안은 공민왕은 청량산 자락에 아직 살아있는 존재이다.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 유리보전의 주련글귀
一念普觀無量劫 (일념보관무량겁 : 한 순간에 무량 세월 널리 관하니)
無去無來亦无住 (무거무래역무주 : 오고 감도 머무름도 또한 없다네)
如是了知三世事 (여시요지삼세사 : 이와 같이 삼세 일을 밝게 안다면)
超諸方便成十力 (초제방편성십력 : 모든 방편 뛰어 넘어 십력 이루리)
▲ 청량사 위 하늘다리와 자소봉 Y형 갈림길
자소봉 방향을 택한다.
▲ 위 삼거리에서 자소봉 방향 계단길
상당히 된비알 침목 계단이 500m 정도 이어진다. 숨이 턱에 차오른다.
▲ 계단을 올라 만난 능선의 이정표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쪽도 길이 있는데, 느낌상 김생굴과 경일봉 방면으로 돌아서 자소봉을 갈 수 있는 길 같아 그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일행을 따라잡아야 한단 생각이 들어 이정표상의 자소봉 방향으로 향한다.
▲ 능선 이정표
위 이정표 지점에서 자소봉 방향 이정표를 따라 잠시 걸으면 경일봉 방면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
일행들과 마주칠까 기대했지만 우리가 늦었는지 일행을 볼 순 없었다.
▲ 자소봉 표지석
자소봉에 이르러 후미 일행을 만나게 된다.
▲ 탁필봉 표지석
마치 붓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붓글씨를 쓰려면 붓 외에도 먹을 가는 벼루가 필요하고, 물을 담는 연적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벼루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앞에는 연적봉을 마련(?)해 뒀다.
▲ 연적봉에서 돌아본 탁필봉(앞), 자소봉(뒤)
▲ 연적봉에서 바라본 장인봉
▲ 연적고개 이정표
연적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붙은 이름 같다.
▲ 뒷실고개 이정표
명칭에 대한 유래가 있을법한데 알 수는 없었다.
▲ 하늘다리
새롭게 청량산 명물로 자리잡은 하늘다리. 그래서인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 about 하늘다리
청량산 하늘다리(Sky Bridge)는 해발 800m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연장 90m, 폭 1.2m, 지상고 70m의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로서 동시에 100명이 지날 수 있으며 2008년 5월에 완공하였다.
▲ 선학봉과 장인봉 사이의 안부 삼거리
차후 이곳에서 두들마을을 거쳐 청량폭포 방면으로 하산하게 된다.
▲ 장인봉(의상봉) 정상표지석에서 증명사진 일컷...
안내판을 읽으며 산이 좀 괜찮다 싶으면'의상'과'원효'는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의상은 이곳에 의상봉 외에 의상대와 의상굴을 남겼다.
※ about 장인봉
청량산의 최고봉으로 높이 870.4m이며 봉상(峰上)은 주위가 약200 미터이며 측면 사방은 만장절벽(萬丈絶壁)의 단애로 둘러 싸여있고 정상은 백구형의 황토층 토질로 형성되어 만병초 (萬病草)등 각종 고산 식물들이 자생(自生)하고 있다. 봉명의 유래는 1,300여 년 전 신라중엽의 고승이며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입산 수도 한 곳이라 하여 불리워졌고 산 중턱에는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의상대와 그가 기거하던 의상굴이 있으며 그 잎이 파란 솔만큼이나 넓어서 우산을 대용할 정도인 매우 희귀한 식물인 강연 (崗蓮)이 자생하고 있다.<안내문 발췌>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두들마을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
날씨 참 아쉽다... 그나저나 이 전망대에서도 두들마을을 경유해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는 걸로 아는데 일행들은 아까 지나온 갈림길로 돌아가서 하산한다고 한다. 산행 초반 청량사에 들러 일행들과 떨어졌었기 때문에 이번엔 그냥 따른다.
▲ 선학봉과 장인봉 사이의 청량폭포 방면 하산길
두들마을을 경유하게 된다.
▲ 두들마을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길을 만나고...
▲ 청량폭포 날머리 이정표
▲ 날머리의 청량폭포
수량도 적고... 뭐 이런걸 폭포라고 안내판까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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